역사속으로 옥산서원과 정혜사지
신라 선덕왕 원년(780)에 송계공(松溪公) 백우경(白宇經)이 이곳에 암자를 짓고, 만세암(萬歲庵)이라고 불렀는데, 이 후 임금이 와서보고, 정혜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경내에는 국보 제40호의 13층 정혜사 석탑이 남아있다.
역사에 기록된 바와같이 우리 시조 송계공(松溪公) 백우경(白宇經)님의 유적지라는 사실은 우리 일가 여러 어른들께서는 능히 잘알고 계시리라고 사료됩니다.
기혹 유적에 관한 소개 및 보족된 점이 있다면 리플을 달아 주시어 더욱 좋은 유적지 소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槿菴 백우현 배상 --
경주 안강읍 옥산서원 과 정혜사지
지정번호 : 사적 제154호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967년 3월 8일 사적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다.
창건된 해는 1573년(선조 6)으로 그가 세상을 뜬 지 20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李齊閔)은 안강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獨樂堂) 아래에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1574년에 '옥산'이라는 편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 사당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띠고 있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무변루(無邊樓)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전개된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體仁廟)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藏板閣)·전사청(典祀廳)·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두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 경내에 있는 어서각(御書閣) 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적의 사저에 있는 독락당에 있는 소장본이다. 보관된 책 중에서 1513년에 간행된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은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52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밖에 《삼국사기》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고 서재인 암수재에는 총 866종 4,111권의 서적이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영남사림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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